사이클링: 베이스 훈련 (유산소 능력, 심박 드리프트, EF)

지루한 유산소 훈련 이미지


장거리 라이딩 후반부에 혼자 쌩쌩하게 달리는 사람, 한 번쯤 봤을 겁니다. 오르막에서는 뒤처지고 평지 인터벌에서도 눈에 띄지 않던 사람이 라이딩이 끝날 무렵엔 오히려 일정한 페이스로 완주하는 경우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알고 보니 강도가 아니라 시간, 즉 유산소 능력의 차이였습니다.

베이스 시즌에 강해지려는 욕심이 오히려 독이 된다

동호회 라이딩에 나가 보면 공통된 장면이 있습니다. 경험이 적고 열정 넘치는 라이더들이 초반부터 선두에서 치고 나가고, 피클라임(Peak Climb, 라이딩 코스 중 경사가 가장 가파른 구간)이 나오면 약속이라도 한 듯 전속력으로 뛰쳐나갑니다. 제 주변에도 그런 분들이 많았고, 솔직히 저도 한때 그랬습니다. 문제는 라이딩 중후반부입니다. 처음에 화려하게 앞을 이끌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무리 뒤로 밀려나 있고, 막판엔 다들 헐떡이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베이스 시즌(Base Season)이란 본격적인 시즌을 앞두고 기초 유산소 능력을 쌓는 훈련 기간을 말합니다. 이 시기에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가 바로 '지난주보다 강하게'라는 생각입니다. 파워 수치를 올리고 싶고, 더 빠른 세트를 소화하고 싶은 욕심은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베이스 시즌의 본질적인 목표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 버티는 몸을 만드는 것입니다.

고강도 능력인 VO₂max(최대산소섭취량)는 비교적 짧은 훈련 기간에도 눈에 띄게 향상됩니다. VO₂max란 운동 중 신체가 최대로 소비할 수 있는 산소의 양을 나타내는 지표로, 수치가 높을수록 고강도 운동을 지속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반면 유산소 능력은 수년,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 쌓이는 다른 성질의 능력입니다. 제가 저강도 훈련을 시작한 후 체력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한 것도 6개월이 훌쩍 지난 뒤였습니다. 그만큼 조급하면 안 되는 훈련입니다.

강도를 올리기 전에 먼저 시간을 늘려야 하는 이유

베이스 훈련에서 발전의 순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운동이 잘 됐다 싶으면 다음 주에 파워를 올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유산소 적응을 극대화하려면 순서가 반대입니다.

예를 들어 FTP(기능적 임계 파워, Functional Threshold Power)가 300W인 라이더가 있다고 합시다. FTP란 약 1시간 동안 지속할 수 있는 최대 평균 파워로, 훈련 강도를 설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이 라이더가 이번 주에 280W로 10분씩 4세트를 소화했다면, 다음 주에 해야 할 것은 290W로 올리는 게 아닙니다. 같은 280W에서 12분씩 4세트, 또는 15분씩 3세트로 지속 시간을 먼저 늘리는 것이 맞습니다. Zone 2(저강도 지구력 훈련 구간)도 원칙은 똑같습니다. 오늘 90분을 탔다면 다음 목표는 Zone 2를 더 높은 파워로 타는 것이 아니라 120분, 150분으로 시간 자체를 늘리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이 원칙은 몸 상태가 유독 좋은 날에도 예외 없이 적용됩니다. 컨디션이 좋으면 Threshold(젖산역치, 최대 유산소 파워의 경계점) 인터벌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저도 그 충동을 정말 많이 느껴봤습니다. 하지만 그런 날일수록 같은 강도에서 Sweet Spot(FTP 대비 88~93% 구간, 유산소 부하와 회복 가능성의 균형점) 세트를 하나 더 추가하거나 Zone 2를 30분 연장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큰 유산소 적응을 만들어 냅니다. 단기 자극을 참고 장기 적응에 투자하는 것, 그게 훈련법을 아는 사람과 열정만 앞서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발전 순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같은 강도에서 운동 지속 시간을 먼저 충분히 늘린다.
  2. 목표 시간이 안정적으로 확보된 뒤에 강도를 소폭 올린다.
  3. 올린 강도에서 다시 시간을 늘리는 사이클을 반복한다.

이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유산소 적응은 반쪽짜리로 끝납니다.

내가 정말 나아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객관적인 방법

"오늘 느낌이 좋았다"는 주관적인 감각만으로는 훈련이 제대로 쌓이고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제가 훈련 데이터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이후로 달라진 게 바로 이 부분입니다. 느낌이 아니라 숫자로 보니 훨씬 명확해졌습니다.

첫 번째로 확인해야 할 지표는 Pw:Hr, 즉 심박 드리프트(Cardiac Drift)입니다. 심박 드리프트란 동일한 파워를 유지했을 때 시간이 흐를수록 심박수가 얼마나 상승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60분에서 180분 사이의 정속 구간에서 심박 드리프트가 5% 이하라면, 현재 강도를 유산소 시스템이 충분히 소화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5%를 초과한다면 강도가 너무 높았거나, 더위와 탈수 혹은 영양 부족 같은 외부 요인을 의심해야 합니다. 저는 여름 라이딩 이후 데이터를 확인했다가 드리프트가 10% 이상 나온 걸 보고 수분 섭취 타이밍을 완전히 바꾼 적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EF(Efficiency Factor, 효율 지수)입니다. EF란 평균 심박수 대비 낼 수 있는 파워 또는 페이스의 비율로, 같은 심박수에서 더 높은 파워가 나온다면 EF가 상승한 것이고 이는 유산소 능력이 향상됐다는 객관적인 신호입니다. 베이스 시즌 내내 EF가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다면,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기초가 쌓이고 있는 겁니다. TrainingPeaks의 EF 관련 자료에서도 베이스 시즌 중 EF 추이를 모니터링하는 것이 훈련 적응도를 판단하는 유효한 방법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산소 훈련의 생리학적 효과에 대해서는 미국 국립보건원(NIH) 문헌에서도 장기적인 유산소 적응이 심박출량, 모세혈관 밀도, 미토콘드리아 기능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 적응들이 바로 심박 드리프트 감소와 EF 상승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양극화 훈련을 통해 저강도에 충분히 투자하면서 라이딩 후반부 페이스가 달라졌을 때의 그 감각은, 단순히 파워 수치가 오른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성취였습니다. 베이스 시즌은 느리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지만, 바로 그 시간이 시즌 내내 버텨주는 몸의 토대가 됩니다. 강도를 올리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마다 먼저 지금 강도에서 시간을 충분히 늘렸는지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스포츠 의학 또는 코칭 조언이 아닙니다.

--- 참고: https://www.trainingpeaks.com/blog/maximize-aerobic-training/